설악산(雪岳山)

 남교리에서 십이선녀탕, 안산, 귀때기청봉, 서북능선, 대청, 천불동, 설악동으로... 

 1994년 10월 1-3일 
 갑작스런 야근을 끝내고 회사 식당에서 밥 먹고, 06시 전날 준비해간 배낭 지고 버스, 전철, 버스 
 갈아타고 상봉터미널 가니 8시 50분, 남교리행 표 사서 타니 손님도 많지 않은데 배낭 창고에 넣고 
 오라 한다... 맨 앞 출입문 창가에 앉으니 9시 10분 출발하며 잠들었다.

 몇 번 깨었다가 홍천, 인제, 원통 지나 남교리에 혼자 내려 창고 문 열려고 하니 버스가 움직여 
 따라가며 두드렸지만, 버스는 내 손에서 멀어지고 욕이 튀어나왔다. 주변 밭에서 일 하던 사람들이 
 돌아본다. 산행의 모든 것이 든 배낭이 없으니 멍한 마음이었는데, 서성거리다니 택시가 와서 얘기하고
 돌려 세워 따라가니 용대리는 지났고, 미시령 오르는 길에 있는 휴게소에서 버스 잡아 배낭 내리니 
 그 운전사 놈은 웃더라고 택시 운전사가 얘기한다.

 그래서 점심도 못 먹고 남교리에 가니 오후 2시가 지나버렸다. 
 매표소 쪽으로 가며 야영금지 라는 글자가 보이고 걱정이더니 역시 가서 얘기하니, 장수대로 넘어갈 
 수는 있어도 지금 이 시간에는 못 넘어간다며 들여보내지 않았다. 시간은 가는데 갈 길은 멀고 막혔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하며 서성거리다 보니... 세 사람이 야영배낭 지고 관리직원과 얘기하더니 들어가는
 걸 보고, 가서 저 사람들은 왜 들어 가냐고 했더니, 사고 나면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고 해서, 
 걱정 말라고 했다. 

 입장료 700원 내고 반시간 즘 걸어서 그들을 만났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그들은 야간 산행한다 하고 
 들어왔다는 말을 했다. 한 동안 그들을 따라 걷다니 가끔 내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4시가 지나니 배고파서 초코파이 두 개와 사탕을 먹고 좀 걷다니 또 배고프다.
 남교리서 점심 먹으려다 배낭 찾으러 다니며 시간이 늦어서 밥 먹을 생각도 없이 산으로 들어섰더니... 
 그들은 6시 40분 즘 어두워지고 공터를 찾아 야영했다. 

 식수만 담아서 혼자 올라가며 가끔 야영하는 이들을 지나 오르며 배고프고 힘은 없고 왜 그렇게 
 멀고 높던지, 7시 반 능선 삼거리에 올라 안산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좀 걷다니 다시 안산과 
 장수대로 가는 길지나 밤 깊어가니 뭐 먹을 생각도 들지 않고, 야영하기로 한 안산 정상에 갈 
 생각뿐이었다. 잡목 우거진 오솔길 지나며 잠시 멈춰 서서 자주 쉬었고, 능선을 걷다 작은 봉우리를 
 올라도 안산 정상 표시는 없었다. 

 몸은 점점 지쳐가고 그래도 가고 싶어 걷다니 안산 정상 300m 안내판이 있고, 나무 아래 야영할 공터가 
 있었지만 그냥 걸었고, 아무리 걸어도 정상은 보이지 않고 한 걸음도 더 걷기가 어려워 앉아 하늘을
 보면 별이 보이고, 그러면 졸리고 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와락 걱정이 되기도 했고, 도무지
 전신 모든 힘은 다 소모된 듯 움직이기 싫었다. 그래서 빵과 물을 마셨지만 금세 힘이 솟지는 않았다. 

 몇 번은 쓰러지고 비틀거리며 안산 정상으로 가고는 있지만 어떻게 올라가나 싶었다.
 밤 9시 지나니 전등 빛도 흐려지고 오솔길 이쪽저쪽을 기웃거리며 야영할 곳을 찾으며 걷다니 
 나 자신에 대한 쑥스러움과 배고픔, 추위로 탈진에 가까운 상태였다. 지난 밤 일하느라 잠을 못 자고 
 바로 산으로 와서 더욱 더 피곤했다. 

 젖은 옷이 차갑게 식어서 온몸으로 파고들고 이 세상에서 혼자라고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또 봉우리 올랐지만 야영할 곳은 없어 내려가다 좋지 않은 공터가 있어 보다가 그냥 내려가서 
 다음 봉우리를 안산 정상으로 느끼며 올라가다 쉬려고 배낭 진 채 앉았다가 배낭위에 누워 별을 보니 
 드는 생각... ‘하늘엔 가장 빛나는 별과 느낄 수 없는 듯이 여린 별이 있는데, 나는 그 별 사이에 
 어느 별을 찾아 내 별을 만들까... 갈등에 빠져 있습니다.‘ 라는 생각을 하다 쏟아지는 졸음에 잠이 
 들었는지 정신을 잃었던지, 몇 분 후 깨어나서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러다 내가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정신 차렸지만 여전히 온몸이 피로했다.

 더 올라갈 수 없음을 느끼고 돌아서서 그 좋지 않은 공터가 있는 곳으로 자주 쉬며 내려가 간신히 
 올라가 배낭을 내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오르던 봉우리가 안산 정상이었다. 

 돌부리가 몇 개 튀어나오긴 했지만 간신히 텐트 치고 보니 남쪽은 한계령 오르는 도로이고 
 절벽이었지만 더 움직일 수 없이 지쳐서 텐트에 들어가니 9시 40분, 밥 해 먹고 나니 10시 반, 
 얼마나 피곤했던지 일기 쓸 여유 없이 잠들었다 깨니 01시 반, 산상 일기 쓰니 02시 반, 
 소변보러 나갔더니 별이 참 많았다.

 밤새 바람에 텐트 자락 펄럭이는 소리와 가스등 가스 나오는 소리 들으며 술 한 잔 마시고 
 등 끄고 잠들었다. 

 2일 
 새벽안개가 자욱했고 몇몇 사람들이 왔고, 배낭 정리하고 해 뜨고 8시 즘 건너다보이는 간밤에 
 오르다 못 오른 안산 정상을 보니 아쉬웠지만 돌아서서 걸었다. 그 삼거리로 가니 산악회 사람들이
 많았고, 난 그들이 잠시 부럽기도 했다. 

안산 정상을 보며
 대승령으로 내려서며 모든 사람들이 장수대서 올라와 십이 선녀 탕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몇 사람과 어울려 몇 시간 걷다 산악회 사람들과 걷다 보아도 1990년 여름에 걷던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귀때기청봉 정상에 앉아 쉬며
 오후 2시 좀 전에 오른 귀때기청봉, 몇 사람이 쉬고 있어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잠시 전에 와서 걷던 생각들을 하다 걷다 한계령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라면 끓여 먹으려고 보니 
 버너가 고장이어 생 라면과 김치를 먹었다. 그리고 연세 드신 어르신 부부께서 야영 배낭 매고 오셨고,
 그 어르신도 점심 끓이시려고 물을 떠 오셔서 기다리다 여쭸더니 같은 방향이라 기다리다, 1시간가량
 함께 걷다 갈 길이 멀어서 앞서서 걸었고, 몇 곳 전망 좋은 곳을 지나 걷다니 날 저물고 피곤하고 
 쉬고 싶었지만 끝청 까지는 간다고 마음먹고 걸었다. 

 서쪽 먼 산 능선으로 노을이 붉게 빛나고 하늘엔 구름이 드리워져있어 비 내릴까 걱정이었다.
 문득 문득 1990년 여름 처음 갔던 기억이 나고 그때와 비슷한 시간이고, 저녁노을도 그렇고...
 걷다니 그때의 기억이 점차 살아나고 완전히 어두워지니 배고프고, 어디서 쉴까 하며 쉴 곳 찾다가 
 나무 아래 공터에 배낭 내리고 나무에 기대어 앉아 간식 먹다니, 그 꿀 참나무는 밑 둥에서 벌어진 
 6개의 줄기로 자라고 있는데, 그 나무가 그때의 기억을 되 살렸고 그때도 그 나무에 기대어 
 청송 산악회 사람들과 쉬었었다. 

 올라가는 길에 가로놓인 바위를 넘어 갈 때는 한 아가씨가 내 작은 배낭보고 바꿔 매 달라고 했던 
 기억도 나며, 그때가 참 그립다는 생각을 하며 오르다니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노을의 아름다움을 
 돌아보며 전등을 켜지 않고 끝청에 오르니 역시 그때 생각이 들고, 잠시 돌아보다 좀 내려서니, 
 공터가 하나 있어서 좀 더 갈까 망설이다, 중청 산장으로 가려니 좀 복잡할 듯 하여 배낭을 내렸다.

 밥 먹지 않고 눕고 싶었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하며, 고장난거 부스고 겨우 김치와 풋고추로 밥 
 먹고 산상일기 좀 쓰다 피곤하고 졸려 잠들었는데, 푹 자고 나니 자정이다. 한 밤에 소변보며 보니 
 대청엔 불이 하나 보이고, 하늘엔 구름이 좀 있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가 좋았다. 

 3일 
 덜된 밥을 김치로 겨우 아침밥을 먹고 마지막 남은 물 한 컵 끓여 탄 커피 맛은 참 좋았다. 

 06시에 간 옛 중청 산장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밑은 콘크리트 위는 나무로 새로 산장을 짓고 있었다.
 대청봉 오르며 옛 생각을 하며 6시 40분에 오른 정상은 일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백두대간과 주변 산 능을 보니 그곳 다니던 생각이 들고 배낭 진 채 바위에 기대앉아 해 뜨는 곳을 
 보며 기다리니, 바람이 차갑고 구름이 많아서 하늘은 보이지 않았고, 사진 찍으려는 이들은 삼각대를 
 접어서 내려가고 나도 희운각으로 내려섰다.

 단풍이 좋고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하산이 늦어져 희운각 지나서 설악동으로 서둘러 걸었다.
 지난 번 산행하던 곳을 지나며 그때 생각을 하며 설악동 매표소로 나오니, 11시 속초행 버스 
 맨 앞에 앉아 졸다보니 물치 이고 바다 가 시원했다.  

 속초 고속버스터미널 가니 오후 1시 30분 표가 있어서 사고 근처 목욕탕으로 가서 샤워만 하고
 버스 탔더니, 길에 차량이 많아서 여러 번 쉬며 늦어지고 자다가보니 밤 10시에 강남 터미널에 
 도착해 서둘러 내렸는데, 버스에서 듣고 있던 라디오를 두고 내린 생각에 다시 올라가 보니 없다.
 오래 쓴 낡은 것이지만 아쉬웠다. 


 첫 날 버스가 배낭 싣고 달아난 거... 오후 4시에 십이선녀탕 지나 밤늦게 안산 정상으로 오르다 
 지쳐 앉아 쉬며 깜박 졸다 위험했던 거... 가스버너 고장난거... 라디오 잃어버린 거... 
 참 이상한 산행이었지만 단풍든 설악산은 좋았다.

 잃어버린 소형 라디오도 같은 거로 샀고, 버너도 그 대리점에 갔더니 망가진 거와 같은 버너가 없어서
 진열대에 시험용으로 쓰던 게 망가진 버너와 같아서 그거 팔라고 했더니, 10,000원에 가져가라 해서
 똑 같은 거로 구했다. 얼마 전에 가스 조절 밸브에 손잡이와 고무 패킹 바꾸고 수리해서 쓰고 있다. 

 2002년 11월 2일 옮김